AI는 한국의 카르텔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까
— 시뮬레이션을 연구 사례로 다시 읽기
법조·언론·행정·재벌·교육. 한국 사회의 권력이 이 다섯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진단은 낯설지 않다. 최근 화두는 여기에 AI라는 변수가 더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다. "AI가 정보·의사결정 비용을 낮춰 권력을 분산시킬 것"이라는 가설은 직관적으로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 가설을 실제 연구 결과들과 나란히 놓아보면, 생각보다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
아래에서는 다섯 개 영역별로 "분산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사례를 함께 소개한다.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하기보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1. 법조 — 접근성은 넓어지지만, 격차는 다른 형태로
AI 법률 도구가 소송 비용을 낮춘다는 방향성은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콜로라도 로스쿨의 한 논문은 소송 관련 문서 생산 비용의 급격한 하락이 기대되는 효과이며, 그동안 접근성을 가로막던 장벽에 실질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예일 로스쿨 저널에 실린 분석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AI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AI 지원에 머무르고, 자원이 풍부한 로펌만 AI를 정교하게 활용하는 '이중 구조(two-tiered system)'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같은 기술이 접근성을 넓히는 동시에, 그 접근성의 질에서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낼 여지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주요 인용 연구 보기
- Simshaw: "Access to A.I. Justice: Avoiding an Inequitable Two-Tiered System of Legal Services", Yale Journal of Law & Technology
- Arbel: "Judicial Economy in the Age of AI", University of Colorado Law Review
2. 언론 — 개인에게 분산되는가, 플랫폼에 재집중되는가
개인·커뮤니티 미디어의 부상이라는 현상 자체는 관찰 가능한 사실이다. 다만 최근 저널리즘 연구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조금 다르다. 국제커뮤니케이션저널에 실린 문헌 리뷰는 생성형 AI 확산이 편집권과 취재 권위의 약화, 저널리즘 품질 저하, 경제적 압박 심화, 독자 신뢰 저하라는 네 가지 위험을 동반한다고 정리하면서,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하는 힘이 개인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플랫폼, 기술기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리포트 역시 생성형 AI 이용률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하면서도, 그 신뢰와 주목이 소수의 대형 AI 서비스에 쏠리는 현상을 함께 보고한다. 개인 미디어의 양적 증가와, 정보 유통 권력의 플랫폼 재집중이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주요 인용 연구 보기
- "Breaking the News? Generative AI's Impact on Journalism and Its Implications for Disinform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 Reuters Institute, Generative AI and News Report
3. 행정 — '집중'과 '분산'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견해
행정 분야 연구자들의 최근 논의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AI가 관료제를 단순히 분산시키거나 단순히 중앙집중화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방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한 공공행정 리뷰 논문은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분산형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향후 정부 혁신의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짚는다. 지방정부·민간으로의 권한 이양과, 데이터·인프라 차원의 중앙 집중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AI가 내린 행정 결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도 여러 논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주요 인용 연구 보기
- Criado, Sandoval-Almazán, Gil-Garcia, 공공행정 관련 리뷰 논문, SAGE
4. 재벌·경제 — 가장 논쟁적인 지점
이 영역에서는 상반된 데이터가 특히 뚜렷하게 갈린다.
한쪽에서는 AI가 창업 비용을 낮춰 개인·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적어도 한국의 최근 상황에 대한 관찰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포브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의 분석은 AI 산업 호황의 수혜가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그간 여러 정부가 추진해온 재벌 개혁의 방향과 반대로 경제력 집중이 오히려 심화되었다고 평가한다. KDI 자료 역시, 미국은 장기투자형 벤처캐피탈이 AI 스타트업의 원천기술 개발을 뒷받침하는 반면 한국은 이런 '인내 자본'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스타트업이 AI 연구의 핵심 주체로 자리잡기 어려운 구조라고 짚는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비슷한 관찰이 나온다. AI Now Institute는 새로운 기업이 AI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결국 소수 빅테크의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에 의존하게 되어, 경쟁보다는 의존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최근 한 연구는 이 현상을 '자본 특이점(Capital Singularity)'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면서, AI가 자본 풀의 규모와 그 자본을 움직이는 의사결정 권한의 집중을 동시에, 그것도 비선형적으로 키울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재벌이 AI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해 살아남는다"는 시나리오와 "AI 인프라를 쥔 소수가 재벌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카르텔이 된다"는 시나리오가 모두 연구 문헌 안에 존재하며, 최근 데이터는 후자 쪽 사례를 더 자주 보고하는 편이다.
주요 인용 연구 보기
- AI Now Institute, Executive Summary: Artificial Power
- 비즈니스포스트, "AI 산업이 한국 경제 성장 주도하지만 부작용도 일으켜" (윌리엄 페섹 칼럼 인용 보도)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스타트업의 AI 원천기술 개발과 벤처캐피탈의 역할"
5. 교육 — '누가 AI를 쓰는가'의 문제
AI 튜터링의 접근성 확대 자체는 여러 연구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실제 활용 양상을 들여다본 연구들은 조심스러운 관찰을 덧붙인다. 한 교육 데이터 분석에서는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상위 5% 학생들 — 이미 성적이 좋고 고소득층 출신일 가능성이 높은 집단 — 만 뚜렷한 성과를 얻고, 나머지 다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현상을 'Five Percent Problem'이라 이름 붙였다. 이 관찰에 따르면 AI는 격차를 좁히는 도구가 될 수도, 오히려 벌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그 방향을 가르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누가 어떻게 쓰는가'라는 변수다.
같은 시기 다른 연구들(스탠퍼드 인종정의센터의 사례 등)은 개인 맞춤형 AI 튜터링이 특정 집단의 성취 격차를 줄인 사례도 함께 보고하고 있어, 이 영역은 결과가 가장 엇갈리는 편에 속한다.
주요 인용 연구 보기
- Gray DI, "Why Your AI Tutor Might Be Widening the Achievement Gap"
- Stanford Center for Racial Justice, "How will AI Impact Racial Disparities in Education?"
세 가지 시나리오, 그리고 하나의 공통된 발견
낙관·현실·비관이라는 세 시나리오 구도로 돌아가보면,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의 최근 저작과 발언들이 자주 인용된다. 그는 저서 Power and Progress에서 AI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기술이 자동으로 권력을 분산시키거나 집중시킨다는 결정론적 서사에 반대한다. 동시에 그의 최근 발언들은 AI 주도 자동화가 부의 집중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을 강조하는 쪽에 더 가깝다.
대런 아세모글루의 경고 (Power and Progress)
기술 발전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며, 선택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AI 주도 자동화가 부의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
실증 연구: 'AI-tocracy' (QJE)
권위주의 체제에서 AI 감시 기술의 확산과 정권 통제력 강화 사이의 관계를 실증 데이터로 정밀 분석.
공통된 핵심 발견
"AI가 권력을 분산시키는가?"에 대한 답: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집중도 함께 만들어진다."
비관 시나리오, 즉 AI가 권위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실증 연구가 존재한다. 퀄리티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QJE)에 실린 'AI-tocracy' 연구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AI 감시 기술의 확산과 정권의 통제력 강화 사이의 관계를 데이터로 분석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중국 관련 사례 연구들도 AI와 클라우드 컴퓨팅이 통제의 정밀도를 높이며 대중 감시 체계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고 보고한다.
다섯 개 영역을 관통하는 공통된 발견 하나를 꼽자면 이렇다: 여러 연구에서 "AI가 권력을 분산시키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집중도 함께 만들어진다"는 쪽으로 수렴한다. 분산과 재집중이 같은 기술적 변화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 어느 한쪽 결론보다 더 일관되게 관찰되는 셈이다.
📚 참고한 자료(예시)
- Simshaw, "Access to A.I. Justice: Avoiding an Inequitable Two-Tiered System of Legal Services", Yale Journal of Law & Technology
- Arbel, "Judicial Economy in the Age of AI", University of Colorado Law Review
- "Breaking the News? Generative AI's Impact on Journalism and Its Implications for Disinform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 Reuters Institute, Generative AI and News Report
- 공공행정 관련 리뷰 논문(Criado, Sandoval-Almazán, Gil-Garcia), SAGE
- AI Now Institute, Executive Summary: Artificial Power
- 비즈니스포스트, "AI 산업이 한국 경제 성장 주도하지만 부작용도 일으켜" (윌리엄 페섹 칼럼 인용 보도)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스타트업의 AI 원천기술 개발과 벤처캐피탈의 역할"
- Gray DI, "Why Your AI Tutor Might Be Widening the Achievement Gap"
- Stanford Center for Racial Justice, "How will AI Impact Racial Disparities in Education?"
- Acemoglu & Johnson, Power and Progress 관련 인터뷰 및 강연 자료
- Beraja, Kao, Yang, Yuchtman, "AI-tocracy",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이 글은 특정 결론을 주장하기보다, 하나의 가설(AI에 의한 권력 분산)을 둘러싼 서로 다른 연구 결과들을 나란히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인용된 연구들 역시 하나의 예시적 사례이며, 결론이 아닌 참고 자료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